이로써 형식적으로는 매우 평면적으로 처리된 이미지에서 구분되는 색상을 가진 오브제와 배경은 교묘한 명도와 채도를 가지고 옵아트와 같은 시각적인 효과로써 서로 순환하는 듯한 느낌을 만드는데, 내용적으로도 모든 사물에는 근원적인 본질 또는 공통된 우주의 원천이 있고, 성취의 상태에 이르는 것은 스스로를 그러한 본질과 하나가 되는 자아실현을 이루는 것이라 믿는 동양적 사상과 흐름을 같이 하여 역시 순환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담뱃갑이나 맥주 캔과 같은 사소한 사물일지라도 생각이나 감정의 흐름을 통해 언제나 동일한 느낌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작가의 오브제에 관한 섬세한 감성으로의 관심과 일체는 자신의 염원을 마음속에 외우듯 반복해서 그려진 꽃잎과 함께 서로 순환하며 배경을 오가고 있다.   

불교에서 깨달음이나 마음속에 새긴 소원을 나타내는 말인 만트라(mantra)는 사고의 도구, 즉 언어를 의미하는데, 특히 신들에 대하여 부르는 신성하고 마력적인 어구를 가리킨다. 이는 소통의 도구인 언어가 자신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 중에 주어진 상황으로 비추어 가장 본질에 가까운 것을 말로써 표현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김수안 역시 그림 속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나타내는 통로로서 오브제를 제시하는 것이며, 그 과정 중에 합당한 오브제에 이르기 위하여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생각으로 배경을 표현함으로써 평면의 그림 속에 순환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언어는 표현으로서의 구실을 다한 생각을 생략하고 정리하며, 소통을 통해서 새로운 재료를 가지고 사유의 깊이를 더해간다. 김수안의 회전목마에서 피를 흘리며 사라져 가는 얼룩말은 슬프기보다는 오히려 정리된 생각과 같이 편안하다. 흐릿한 선으로 표현된 회전목마의 기둥은 더 이상 돌지 않아도 되는, 소통을 마친 순환의 맺음이다. 즉 자신의 작업 속에서 이루어진 행위를 통하여 오브제와 합일을 이룬 감동은 한계를 극복하고 순환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도 되는 것이다.   

이제 다시 순환의 시작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깊은 휴식에 들어가는 것인지 침대 위로 흩날리는 꽃잎은 정지된 시간 속에서 오브제와 소통을 하며 자아실현의 환상을 이룬다. 김수안의 작업은 마치 가까운 시간 안에 다가올 자신의 염원을 타블라 라사* 위에 새겨가는, 미래를 지향한 순환과 같다.

*타블라 라사 (Tabula rasa: 라틴어로 "깨끗한 석판") :  인식론에서 어떤 개인인 인간이 태어날 때에는 정신적인 어떠한 기제도 미리 갖추지 않고 마음이 '빈' 백지와도 같은 상태로 태어나며 출생 이후에 외부 세상의 감각적인 지각활동과 경험에 의해 서서히 마음이 형성되어 전체적인 지적 능력이 형성된다는 개념이다.

*김수안 작가는 서울시립대학교 및 영국의 골드스미스 대학과 첼시 칼리지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였다. 본 전시는 작가의 첫 번째 개인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