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0일로부터... 옆집갤러리는 기회가 되어 공모를 통하여 선정한 서윤아, 안호성, 홍수정 3명의 작가와 함께 옥수동에 작은 공간을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운용할 수 있었다. 기회가 되어라고 글을 시작하는 것은 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어떤 대단한 공적기관이나 미술관이 아닌 더욱이 충분한 인적자원이 없음에도 다만 공간이 허락하여 기획될 수 있었음이다. 그렇기에 처음 옆집갤러리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착안하였을 때부터 참여작가에게 단지 자신의 작업을 돌아보는 스쳐 지나치는 시간이 될 수 있으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어떤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프로그램은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어 참여 작가에게 한 번은 레지던시 경험이 많은 선배 작가의, 한 번은 평론가의 방문과 편안한 담화가 있을 것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마치고 성과를 보이는 전시를 준비하며 좀더 개별적으로 허심탄회하게 작업에 관하여 또 현실적인 것들에 관해 서로 생각을 나누어 보자고 하였다. 선배 작가로는 차기율 선생님이 평론가로는 김성호 선생님이 방문하셨다. 두 분 공히 말씀하신 요지는 전시, 레지던시 프로그램, 작품집의 출간 등 작가로 살아가는 길에 바라보는 경험, 목표와 같은 것이 매 순간순간마다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게 생각되고 그로써 얻게 되는 성과를 통하여 마치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바뀔 것만 같이 생각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으며 심지어 어느 순간 현실적인 생활에 관한 문제로써 작업을 중단하게 되더라도 모든 것이 시간과 함께 지나치고 결국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끝까지 작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와 자신의 생각을 담은 이미지로써의 작품이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 사회의 구성원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의 필요를 관계를 지어 나누는 것인데 작가의 인생은 어쩌면 아무도 필요를 말하지 않은 것을 생산하며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된다. ● 그것은 오직 자신의 사적 관심으로부터의 출발이며, 또는 관찰자로서의 관계의 원리에 관한 의견 혹은 소통의 방법에 관한 입장의 제시에 관한 것이다. ● 그럼에도 우리 역시 일상의 늘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떤 것이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지나칠 수밖에 없음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유한한 생명과 달리 굳이 시간의 흐름이나 혹은 그 속에서 만나고 흩어지는 관계의 변화와는 달리 사고(思考)의 길이는 영원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어서인지 우리는 미리 주문하지 않은 그들의 평면, 입체, 행위 등으로 생산된 이미지의 결과를 통하여 지나간 경험을 돌아보며 잊고 있던 사고의 원리와 구조에 관한 상상력의 세계에 몰입하게 된다. ● 이제 곧 2015년 2월 9일을 마지막으로 짧은 3개월의 시간이 지나치고 첫 번째 옆집갤러리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마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전에 2월 6일을 시작으로 26일까지 성과 보고전 <지나치다>가 진행된다. 작가와 갤러리의 관계는 작가와 딜러의 관계로 보자면 사업 파트너와 같기도 하지만, 또 작가와 기획자의 관계로 보자면 한편, 자신의 생각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처음 나누는 친구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전시기간 동안에는 서윤아, 안호성, 홍수정 작가와 처음 계획된 대로 그들의 작업과 계획에 관하여 생각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시를 찾아 함께 하는 이들과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처음 시도한 옆집갤러리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내게 큰 즐거움이었듯이 함께한 서윤아, 안호성, 홍수정 작가에게도 지나치는 시간이지만 작은 전환이 되었기를 바라며, 다시 또 이러한 기회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에 어떠한 형태로든 옆집갤러리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이어질 수 있도록 방법이 강구될 것이다. - 옆집갤러리
안호성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맹자 ‘우산지목’의 내용 중에서 사람들이 아침과 낮에 구속당하여 어리석은 잘못을 되풀이하게 되고 그로 인해 괴롭게 되는 것과 같은 상황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새롭고 참신하기 보다는 단지 스스로 현실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조형화하여 자연스럽게 읊어내는 것이라 하며 이와 같이 말한다. “나는 도통 새로운 것과는 이질적인 거리감을 느낀다. 나는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칠하고 싶은 색을 칠하고 느끼고 싶은 것을 느끼고자 한다. 나는 모두들 새롭다고 하는 것이 도무지 새로운지 모르겠고 오히려 그것이 남을 추종하고 따라가고 어디서 보고 배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도대체 왜 작업태도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되는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제일 중요한 ‘화가가 그림을 통해 세상에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다른 것엔 도통 관심이 없다.”
홍수정 작가는 일상 속의 생경함에 관심을 가지고 시야에 들어오는 개체의 한 부분을 담아, 낯익은 것이 낯설게 다가오도록 하는데 반복되는 얽혀있는 선들은 작은 타원형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것은 실타래, 머리카락 혹은 거미줄처럼 얽혀진 선들로써 증식하는 형상을 갖는다. 그것은 시들어 버리는 꽃잎에서 착안한 것으로 대상의 명암과 관계없이 평면적으로 처리된 개체에 작가의 꿈과 타자의 꿈을 대변하듯 여기저기를 넘나들며 번져나가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며, 우리 모두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있을 다양한 꿈을 바라보고 상상하는 자기 고백적 치유의식과 상호작용을 위한 내적 심리세계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서윤아 작가는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나 늙어 죽을 때까지의 과정. 그 반복적인 굴레의 궁극에 관한 물음의 답을 자신의 내면에 관한 관찰로써 수많은 개체 중 하나로서의 자신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찾고 있다. “내가 본 내면의 세계는 깊고 어둡고 고요한 곳이었다. 건조하고 황량하지만 따뜻하고 포근하기도 했다. 빛은 금세 빨려 들어가 사라지고 알 수 없는 검은 것들이 공기를 가득 메웠다. 나는 그곳에서 환영처럼 눈앞에 어른거리다 사라지고 잔상처럼 머릿속을 헤매는 이미지들을 잡아 기록한다. 궁극의 실체에 다가서기 위해 응축하고 간결화 한다. 그것은 마치 이 세계의 탄생에 대한,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과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