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영 작가의 작품은 무수히 많은 점과 선으로 반복되는 빛의 구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바탕에는 깊이 있는 색이 있다. 가늠할 수 없는 큰 에너지를 담고 있는 가는 선들은 작은 점으로 응축되는 지점을 만들며 낯선 도형의 모습을 형성하는가 하면 서로 교차되어 지나치며, 확장되는 색의 공간으로 뻗어가기도 한다. 특히 날개의 형상과 같이 추상적으로 만들어진 도형의 모습은 SF 영화 속의 우주스테이션을 연상하게 하며 빛을 발하는데, 마치 별빛이 이어져 만들어진 별자리와 같은 가상선이 공상 속의 인공물을 은유하며 자유를 그려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에 있는 관계를 보여 그 존재를 알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박혜정 작가의 그림은 기억을 더듬고 있다. 그동안의 작업이 꿈속에 담긴 환상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근래의 신작은 그 꿈을 만들어내는 더 근원적이고 실제적인 심리의 바탕을 보여주는 듯하다. 박혜정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어디론가 달려가는 소녀의 모습인데, 이전 작품에서 무엇인가를 찾아, 아니 어디론가 향하고 있던 것과는 달리-2010년작 <The Hidden Light I>과 <The Hidden Light II>에서 여인은 깊은 숲을 향하고 있다- 신작에서는 그 대상이나 목적이 모호한 듯하다. 그것은 패턴화된 나무 숲과 건물의 아치 너머로 펼쳐진, 사라진 공백의 배경이 만들어내는 느낌이다. 어쩌면 역전된 해석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The Hidden Light>의 인물이 어스름한 숲속에 있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떤 것을 향하여 “조심스레” 달려갈 때, 이는 미지의 것에 대한 발견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내포한다. 이와 달리 <December>와 <A White Building>의 소녀는 더욱 적극적 자세로, 마치 이미 정확히 알고 있던, 하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어떤 대상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 박혜정의 작업은 상실된 어떤 과거로 향하고 있다. 즉, 이전의 작업이 꿈속의 환상의 모습이었다면, 신작은 그 꿈을 만들어내는, 상실과 부재의 현재에 근접하고 있는 것이다.
전현선 작가는 이야기 전달의 가능성, 즉 내러티브의 구성을 회화의 범주 안에서 질문하고 있다. 화면 안에 배치된 대상들이 주고받는 시선과 위치에 따른 상호 관계가 어떤 모호함을 창출하면서 이야기를 형성하는 과정을 작업으로 옮긴다. 특히 작가는 어린 시절 읽은 동화에 주목한다. 동화는 인류의 집단적 기억이면서 우의적, 은유적, 환상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규범적 의무를 부여하는 사회 장치이고, 동화가 취하는 서사구조에는 배경과 인물의 고정적 위치가 있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이 고정적이고 닫힌 요소를 회화를 통해서, 즉 인물과 사물을 회화 속에서 불평형 상태로 위치시키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명백한 사건의 일직선적인 진행이 아닌 사건의 전후를 보여주는 듯한 모호의 장치를 통해서 전현선 작가는 새로운 회화의 이야기를 만든다. <옆집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