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원의 그림은 ‘감각의 형상’이다. ‘감각’은 예술과 무관했던 그를 이 세계에 발을 딛게 한 동기임과 동시에 풍성한 그림 소재이기도 하다. 감각의 발견은 공대 재학 당시 우연히 펼쳐 든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작품집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성적 사고를 우위에 둔 공과대에서 합리적 답을 원하는 물리, 화학 실험에 지쳐있었던 그에게 로스코의 색면 추상은 새로운 경험임과 동시에 전에 없던 그의 감각의 일부분을 살짝 들추어내는 계기가 된다. 특히 밝은 시각 효과를 내는 색면을 통하여 신체의 감각을 탐구한 로스코의 작품은 ‘감각의 기억’을 표현하는 장영원의 회화와 묘한 연결고리를 갖는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거장의 감각 탐구의 결과물은 진심으로 무언가에 감동 받았던 기억이 흐릿한 아니 아련한 장영원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고 그후 공대가 아닌 예술이, 차가운 물리, 화학 실험이 아닌 자신의 감각을 연구내지는 분석, 형상화시키는 작가로 거듭나게 한다.
그의 초기 작업은 작가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감각들에 대한 표현이라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감각 형상’은 관계성으로 인해 파생되는 감각들까지 모아 재조합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현재 작업은 과거보다 넓은 의미를 갖게 되는데, 과거에는 직접적인 작가의 기억에 의존해 왔었다면 현재작업은 직접적이면서도 간접적으로 감각되고 사유된 기억에 대한 작업이다. 이것은 작가와 대상이 관계 맺게 되었을 때 발생되는 수많은 감각들을 형상화시키는 것으로 항상 그가 초반 작업부터 이끌어 왔던 ‘감각된’ 감각들을 최대한 끄집어내어 형상화시키는 노력이 수반된다. 대부분의 초기 작업은 초상화의 형식을 띠고 전면을 바라보는 형식을 취하는데, 가운데 둥근 원의 사용은 불완전한 요소로서 비구상적 표현 혹은 기호라고 부를 수 있다. 이것은 작가와 일차적, 직접적인 관계를 맺은 대상의 형상을 의미한다. 안면부에 드러나는 타원형태의 단색 면 사용은 눈, 코, 입 각 기관의 대상을 나타내는 기호의 사라지게 만듦으로써 대상의 정체성을 지우고 작가와 대상의 관계성만이 남게 하려는 의도이다. 하지만 현재의 작업은 그것보다 좀 더 나아가 대상의 기호를 완전히 삭제하여 관계에 대한 감각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감각된 기억’까지 끄집어 내는 작업이다. 이것은 일차적 관계를 넘어서는 삼차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보다 폭넓게 작가에게 감각되는 것을 표현한다. 즉, ‘작가와 대상의 관계 맺음’이라는 사건을 통해 사유되는 감각에 대해 보다 폭 넓은 감각의 재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의 감각은 단지 물리적 감각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정신 활동을 통한 감각을 뜻하는데, 작가가 어떠한 일련의 사건 즉, 일상생활에서 매일 같이 부딪히는 사건 중,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라는 사건이 발생하였다면, 이 사건을 통해 발생되는 감각들 슬픔, 처절함, 외로움, 분노, 그리움과 같이 텍스트로 나열하면 수도 없이 많은 단어와 문장으로는 설명 불가능한 감각을 재구성하여 형상화하는 것이다.
‘감각의 재구성’은 공간에서 다시 한 번 이루어진다. 작가는 작업 시작 전에 전시할 갤러리 공간을 측정하고 그에 맞추어 캔버스 사이즈를 결정한다. 이는 캔버스 위에서만이 아니라 공간까지도 감각 형상화의 일부로 삼는 장영원 만의 독특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전체가 모여 그의 ‘감각’을 형성하기 때문에 개별적인 작품 또한 하나의 조각으로 나눠진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여러 작품이 공간 안에 전시 되었을 때 관객은 여러 개의 조각으로 나눠진 작가의 감각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캔버스 위에서 형상과 기억을 재구성하는 그의 작업은 갤러리 공간에 이어 관객이 전시장 안에 들어 섰을 때 하나 하나의 작품 감상보다도 여러 작품이 모여 공간 안에서 울리는 작품의 공명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글: 정상연 (미술비평가) Rennes 2 대학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동대학원 미술사와 미술비평 석사 졸업. 현재 덕수궁미술관 작품해설사로 활동 중